2026.04.04 (토)

  • 흐림동두천 14.0℃
  • 흐림강릉 17.1℃
  • 흐림서울 15.3℃
  • 대전 15.5℃
  • 대구 16.5℃
  • 흐림울산 15.7℃
  • 광주 13.5℃
  • 흐림부산 14.6℃
  • 흐림고창 12.5℃
  • 제주 15.3℃
  • 흐림강화 12.7℃
  • 흐림보은 14.8℃
  • 흐림금산 14.8℃
  • 흐림강진군 12.2℃
  • 흐림경주시 16.0℃
  • 흐림거제 13.0℃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선학(先學)의 시집을 받는 감정'

번역과 독서, 그리고 독자의 품격에 대하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박이도 선생의 시집을 받았을 때다. 선학(先學)의 시집을 받고 송구하여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윤수천 선생의 어머니를 주제로 한 동시집을 받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시를 만나면 감상평을 나누고 싶지만 쉽게 꺼내지 못한다. 괜스레 선학의 시에 상처를 내는 듯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감상평을 쓰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선학이 번역한 책을 읽으며 나름의 판단이 생기더라도 되도록 평론을 유보하려 애쓴다. 시도반에게는 선학을 평론할 내공이 충분히 쌓여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성복 선생과 김연수 선생의 번역 시집을 읽을 때도 그랬다.

시도반은 한국 문학을 편애한다. 소설을 읽을 때나 시를 마주할 때도 한국어가 주는 결, 호흡, 숨결을 우선한다. 작가의 문장 맛, 미세한 리듬과 음성이 곧 작품의 핵심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문학을 읽을 때면 어딘가 '덜하다'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번역이라는 과정 때문에 원문의 고유한 울림이 희석되는 것은 아닐까, 늘 경계심이 있었다.

그 경계는 문득 허물어졌다. 김연수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으며 생각에 틈이 생겼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읽는 사람이 훌륭하게 읽을 줄 알면, 번역본이고 뭐고 상관없다."

번역서가 원문을 완전히 되살릴 수는 없지만 독자의 그릇, 해석 능력, 감수성, 상상력이 충분하다면 번역을 통해서도 시는 온전히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문장이 생각을 뒤흔들었다.

이후 이성복 선생님의 번역 시집을 보며 번역가는 단지 원문을 옮기는 전달자가 아니라 '다른 언어의 동료 시인'임을 깨달았다. 원시(原詩)의 골격과 번역가의 목소리가 만나 전혀 새로운 시가 되는 순간을 보았다. 그때 알았다. 글의 본질은 ‘누가 옮겼는가’보다는 ‘누가 읽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독자의 품격과 태도, 그것이 글의 마지막 완성이다.

번역을 '원문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보충하는 작업'이라고만 보는 것은 반쪽짜리 이해다. 번역은 결핍을 드러내기도 하고, 동시에 새로운 발명을 한다. 원문의 멜로디를 온전히 옮기는 건 불가능할 수 있지만, 번역가는 다른 리듬, 문장 길이, 단어 선택, 이미지 배치를 통해 새로운 울림을 만든다.

파울 첼란의 무게, 폴 엘뤼아르의 산만한 자유, 로버트 프로스트의 절제된 시선, 브레히트의 냉정한 아이러니. 이들의 고유한 음성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은 손실과 창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고민하는 일이다.

이성복 선생님의 번역(혹은 '시를 붙이는' 행위)은 그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훌륭한 번역가는 원문에 충실한 기계가 아니라, 한국어로 다시 시를 짓는 사람이다. 그는 원문의 결을 존중하되 한국어 독자가 잘못 읽지 않도록 리듬과 호흡을 재설계한다. 번역 시를 읽는다는 것은 곧 번역가의 시와 원시 사이의 혼합형을 읽는 일이다. 그리고 그 혼합형을 맛있게 소화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귀는 감고 뜰 수 없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구절은 독자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사실로 읽고, 누군가는 소리의 위험성과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경고로 읽는다. 시도반은 후자에 속한다. 귀는 닫을 수 없기에 우리는 늘 무언가를 듣고, 영향받으며 살아간다. 번역 시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자신이 가진 언어적·문화적 필터를 여닫는 능력이 필요하다. '열려 있다'는 것은 단지 수용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로 원문과 번역의 차이, 번역가의 선택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사실 한국어로 쓰인 시조차도 즉각적으로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의 난해성보다는 독서 훈련 부족의 문제일 때가 많다. 외국 시의 번역본을 읽을 때는 두 겹의 필터 -원시와 번역- 를 통과해야 하므로 독자의 그릇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성복 선생의 번역 시집에는 브레히트, 프로스트, 첼란, 엘뤼아르가 등장한다. 이들의 시는 번역을 거쳤음에도 강한 이미지와 감정을 전달한다. 그것은 번역가의 솜씨와 독자의 태도가 빚어낸 작은 기적이다.

브레히트의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라는 문장은 우연과 존재의 필연을 말한다. '내가 찾지 않았지만 어떤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서늘한 진실이 번역을 통해서도 잘 전해진다.

번역은 완전한 대체물이 아니다. 번역은 독자가 시를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문법이다. 그 새로운 문법을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배너
대만-베트남 문학 교류… 시와 바다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문학의 길
·동아시아 바다가 다시 문학의 길로 열리고 있다. 2026년 3월 14일 대만 타이난에서 열린 '대만 시인의 날'과 대만-베트남 문학 교류 행사를 계기로 세 나라 문인들의 교류가 활발히 이어지면서 한국·대만·베트남을 잇는 새로운 국제 문학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번역과 창작, 역사 탐방과 시민 문화 교류가 결합된 이번 행사는 동아시아 문학이 서로의 언어와 기억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동아시아의 바다가 다시 문학의 길로 열리고 있다. 2026년 3월 14일 오전 대만 타이난에 위치한 국립 청쿵대학교 대만어문학과(國立成功大學台灣文學系台) 강당에서 제4회 대만 시인의 날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대만 문학단체와 대학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오후에는 타이베트남문학관에서 대만과 베트남 시인·작가들이 참여한 시 낭송과 문학 교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번 행사는 대만문필회, 발지 타이어 재단, 대만 로마자 협회, 그리고 성공대학교 베트남연구센터와 대만문학과 등이 공동 주최한 국제 문학 교류 행사로, 대만과 베트남 문학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 낭송과 작품 토론,


배너
배너

포토리뷰


배너

사회

더보기

정치

더보기
유은혜 경기교육감 예비후보 "모현읍 학생 장거리 통학… 가장 빠른 학교 설립 해법 찾겠다" (수원=미래일보) 이연종 기자 = 역대 최장수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유은혜 경기도교육감 예비후보가 고등학교가 없어 장거리 통학을 하고 있는 용인 모현읍 학생들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 설립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 예비후보는 12일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서 열린 고등학교 설립 간담회에 참석해 주민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듣고 현실적인 학교 신설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모현읍은 인구 약 3만5000명의 대규모 주거지역임에도 일반계 고등학교가 한 곳도 없어 지역 학생들이 인근 포곡읍이나 광주시, 성남시 등으로 왕복 2시간에 가까운 원거리 통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주민들과 학부모들은 "모현에는 고등학생은 있지만 정작 고등학교는 없다"며 "지역 내 유일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인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고로 일반계 학생 배정이 가능한 공립 고등학교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모현읍 학생들은 선택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또다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며 학습권 보장을 위한 공립 고등학교 설립을 요청했다. 학부모들은 경기도교육청 소유 부지인 모현중학교 인근

배너
배너